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 찬미예수님

오늘 강론을 준비하려고 이리 저리 조사를 하던 중. 배가 고파왔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려면 1시간이 더 있어야 했기에 그 기다림의 시간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보면, 병자들도, 또한 사흘 동안 굶은 군중들도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러한 이들을 측은지심, 곧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저는 사실 기적도 기적이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의 연민이 아닐까 합니다. 그 사랑이 없다면, 기적과 이적은 앞으로도 중요한 부분이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더 고도로 의학이, 과학이 발달하면, (지금도2000년 전에 비하면 충분히 발전했지만) 불치병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고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예를 들면, 치매나 파킨슨 병도 극복 가능한 시점이 올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제는 고치는 것과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의 사건이 의미하는 바와 어떤 이유로 기적이 일어났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사건을 통해 당신의 현존과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잔치를 베푸시고 그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신다”는 예언이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는 죽음이 영원히 없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적은 작은 표징인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아주 작은 면을 보여주는.

그런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 있어서, 무미건조하게, 기계적으로 어떤 감정이 없이, 영혼이 없이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분께서는 연민과 자비로 이 상황에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십자가 사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곧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십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신 것이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인 것이죠. 이 말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병자들, 군중들처럼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도 있지만,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파스카 사건을 안 우리들은 훨씬 더 깊은 사랑으로 초대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라는 사명까지 부여받았습니다. 오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인데, 다음은 영성체 후 기도문입니다. 

“하느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가 복된 프란치스코의 불타는 사랑을 본받아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르고 복음에 충실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상급을 받게 하소서.”

 사천 명의 군중은 빵을 배불리 먹었지만, 우리는 성체 받아모시고 있음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이처럼 크신 기적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느님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의 오심을 잘 준비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