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전례력으로는 연중 제34주간, 곧 마지막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교회의가 정한 성서주간이기도 하지요.
23일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우리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주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였습니다.
하지만 루카복음 23장의 내용을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빈정과 조롱’의 대상이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왕 정도가 되려면,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벨사차르 임금’ 정도는 되야 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벨사차르 임금은 왕이긴 하지만, 나쁜 왕입니다.
그는 유다인 종교를 모욕할 목적으로 자신의 부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해서 가져온 성전 기물들에 술을 따라 마시며,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욕되게 한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한 지도자들, 군사들의 장면이 같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는 이들이 보이는 것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으시지만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외면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현현인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였으니,
그들은 소위 ‘눈뜬 장님’이었던 것입니다.
벨사차르 임금은 예루살렘 성전 기물을 술잔의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거룩한 것을 속된 용도로 사용한 것이지요.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한 그는 대신에 눈에 확실히 보이는 것들을 찬양합니다. 곧 그는 우상숭배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벨사차르 임금의 이러한 엽기적인 행동은 제가 엽기적이라고 한 것은 아무리 권세가라 해도 신성시하는 기물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괴한 행동인 것이죠. 이러한 기괴하고 엽기적인 행동을 한 벨사차르 임금의 행동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얼마나 흠숭하며 그분께 정성을 다해 찬양드리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례력 마지막 주간을 맞아서 우리가 맞이하는 복음 말씀은 종말을 준비하는 마음, 곧 그리스도 왕국의 완성을 기다리는 준비 태세를 가지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예수님께서 박해를 각오하라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복음환호송의 묵시록 말씀처럼, ‘죽을 때까지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분은 보이시지 않지만 온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하느님의 어린양, 보호자이신 성령을 믿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고 믿지 않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처럼,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8,24-25)
우리는 하느님을 직접 볼 수 없지만,
말씀으로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마침 성서주간을 맞아, 이번 주간 말씀 안에서 나에게 건네시는 하느님의 소리인 ‘침묵’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그동안 내가 나의 종말을 깨어 잘 준비하고 있었는지, 아닌지 그분께서 일러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