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올해 위령의 날은 주일에 거행합니다. 그래서 대영광송과 신경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없습니다.
위령미사는 기쁨의 잔치가 아니라, 속죄와 자비를 청하는 기도이기에 부활의 승리와 환희를 노래하는 대영광송은 사순 대림 때처럼 안 하고, 신경은 삶과 죽음의 행위 또는 실존의 고백으로 대체됩니다.
이처럼 오늘 전례는 우리에게 강력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신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다음 글은 어떤 분이 외할머니를 추모하며 적은 글인데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병원에서 간병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새벽 세네 시쯤, 할머니가 나를 깨우시길래 보니 침대 위에 대변을 보신 상태였습니다.
가만히 계셨으면 내가 알아서 치우고 기저귀를 갈아드렸을 텐데, 할머니도 답답하고 찝찝하셨는지 병원 시트로 직접 닦아내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
“아, 진짜 할매 나한테 왜 그러는데요.”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짜증을 내지 않았더라면,
그저 “괜찮아요, 놔두세요.” 하고 따뜻하게 말씀드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할머니 장례식 때, 엄마와 이모들보다 내가 더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때 한 번 내뱉은 짜증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입니다.
할매… 나 진짜 미안하데이.
이처럼 ‘죽음’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력감을 들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저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처절함’이 떠올랐습니다.
욥은 “아, 제발”이라고 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화답송에서는 주님께 청하는 것이 오직 한 가지라고 합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온통 힘겨운 사람들에 관한 이들을 지칭합니다.
만일 어떤 이가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오늘 전례를 ‘글’로만 마주하게 된다면,
‘희망’보다는 ‘절망’의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그런 감정을 내뱉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가까운 이의 죽음을 앞두고.
하지만 우리는 믿음이 있기에 본기도에서처럼 이렇게 고백하며 기도합니다.
“성자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저희의 믿음을 깊게 하셨으니
저희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저희도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굳건한 희망을 지니게 하소서.”
화답송 시편에서처럼,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두렵고, 무서울 것이 없어지고,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지게 됩니다.(시편 참조)
그리고 사도 바오로 로마서 말씀처럼,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복음 환호송에서처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복음에처럼,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외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절망보다 희망을 노래한다는 것은 우리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초대에 우리가 응했기 때문에 가능한 사건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성 암브로시오 주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물을 줄이고 기도에 힘쓰십시오. 운다는 것은 잘못은 아니지만 당신을 떠난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부활 신앙을 온 몸으로 고백하는 시간으로 추모를 넘어 위령의 날 미사를 거행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