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콕스의 『예수 하바드에 오다』의 부활에 관한 장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나는 부활 체험이 있는가? 하느님 나라 완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사실 한창 사목생활로 지칠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시위 현장에 갔다. 거리 미사다.
대한문, 광화문 광장, 강정 마을, 굴뚝, 열린 송현광장
기도해 주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이기적으로 보자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갔다.
그러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궁금해 할 것이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지가.
복음에서처럼 제자들이 만난 것처럼 만나지는 못 했다.
일단 두려움과 연민과 더불어 불의에 대한 저항감이 생겼다.
이러한 감정은 예수님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 있을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는 생각은 든다. ‘번제물’, ‘희생 제사’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그런데 지금은 현상으로 보면, 당시보다는 평화로워 보인다.
이것이 부활이 아닐까.
하비콕스가 말하는 ‘해방’이 아닐까.
나는 기도했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광야로 나갔고, 바쳤고, 주님께서는 세상을 평화롭게 부활시켜 주신 것이 아닐까 하고 해석해 본다.
성주간 월요일, 2026년 부활절을 기다리며.
십자가와 부활을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