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12
1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나는 세례자 요한의 ‘독설’이 통쾌하다고 느껴진다.
저렇게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에게 ‘독설’을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리가 많지만 어떤 권력자에게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데)
그는 ‘찐’이기 때문에 저런 ‘독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독설하기 위해서 ‘찐’이 되기를 노력하는 것은 방법론상 좋지 않지만)
그의 독설과 예수님의 독설은 정의로움에 비롯한다.
그들은 공동체를 해치는, 곧 의도도 나쁘고, 행실도 나쁘고.
환멸을 느낄 정도로 나쁜.
저 정도면 아마도 성령을 거스르는 죄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쭉정이는 불에 태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정의롭게 말할 수 있는가?
또는 나는 거짓 회개, 또는 남을 기만하는 회개를 하지는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