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맑은 하늘 오월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고마움을 표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사랑으로 길러 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입니다. 카네이션을 드리고 선물도 드립니다. 이처럼 사랑은 서로 상호 작용을 통해 점점 확산해 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사랑이 가진 커다란 힘입니다.
마침 오늘 복음도 사랑의 계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그러면서 가장 큰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3절)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두고 볼 때, 아마도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제자들 역시 교회를 위해 순교의 길을 걸어서 예수님과 같이 위대한 사랑을 사람들 마음 속에 남겨둘 것이라는 암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그 뒤에 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살아간다면, 필연적으로 예수님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또한 이러한 사랑의 길로 불리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큰 사랑에 동참하라는 말씀에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사랑을 우리 힘으로 단번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지겹도록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지만,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역시 온전히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어떻게 목숨을 바쳐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간절할 수 있으나 몸이 따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 원인으로 죄일 수 있고, 육체의 한계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나를 자책하며, 우리는 내 탓이오 라고만 하면서 영원한 죄인처럼 암울하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도 큰 사랑을 하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그만큼의 은사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성인들과 순교자와 같은 분들이죠. 우리는 최소한이라도 옆집의 작은 성인이 되겠다는 지향으로 큰 사랑보다는 작은 사랑부터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어제 빈민사목위원회 소속 이영우 신부님이 운영하는 대학동 고시촌에서 처음으로 지구사제회의를 하였습니다. 이미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소개가 되어서 다 아시겠지만, 이 신부님께서 그 지역에서 생활하시는 삶의 활력을 잃은 중장년들 위한 쉼터를 마련하셔서 그들에게 당신은 참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주된 사업은 밥을 나눠 주시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지구 사제들은 지구 차원에서든 본당 차원에서든, 개인 차원에서든 그곳에 후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나는 이영우 신부님과 같은 큰 사랑은 못 해도, 옆에서 연대하며 응원과 기도는 가능합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는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제1독서를 보면, 안티오키아 교회에 문제가 생겼지만, 사도들은 성령 안에서 지혜와 배려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도들이 더 큰 사랑을 실천하기 전에, 곧 순교하기 전에 교회를 사랑하였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사랑하였습니다. 당연히 우리 또한 이러한 사랑은 할 수 있습니다.
코린토 1서에서 사도 바오로께서 모두가 다 기적을 행할 능력을 지닐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신 것을 약간 패러디해서.
우리라고 해서 맨날 미워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라고 해서 험담하고 비방만 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우리에게 명령으로 내려주신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기에 할 수 있는 사랑부터 차근차근 하면 좋겠습니다.
부모님 사랑. 이웃 사랑. 교우 사랑. 가족 사랑.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있어야 나중에 원수 사랑.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가 바라는 바로 그것, 곧 하느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러니 작은 사랑부터라도 꾸준히 실천합시다.